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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심하게 아프니 않으면 병원가지 말고 그냥 참으라니
강동진(논설위원)  / 2008년10월27일 18시33분

‘저소득층과 중증질환자 진료비 부담 대폭 경감’
위 문구는 보건복지가족부가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한다면서 10월 27일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많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이 문구만 보면 국민들은, 특히 가난하거나 암 등 중증질환을 가진 이들은 병원비에 대한 걱정이나마 덜게 되었다고 한시름 놓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기본적으로는 암과 희귀성난치질환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암은 10%에서 5%로, 희귀난치성질환은 20%에서 10%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리고 비만이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여 중증질환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도비만환자에 대한 약제, 수술비 등에 보험적용을 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현재 보험적용이 되는 진료비의 경우에도 저소득층은 그 부담이 크기 때문에 본인부담상한액을 차등 적용하여, 현재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6개월간 200만 원을 일률 적용하는 것을, 하위 50%층에게는 6개월간 100만 원으로 하향조정한다고 한다. 그 외 의견 수렴 후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노인틀니, 치석제거, 치아홈메우기, 불소도포 등 진료비 부담이 큰 치과진료항목과 초음파, MRI, 한방물리요법에 대해서도 보험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해서, 보건복지가족부가 표방한 대로 ‘생활공감, 국민행복’정책을 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의심병이 도는 건 필자의 노파심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위와 같은 정책을 펴려면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올해 건강보험재정이 사상 최고의 흑자를 기록한다는 데, 그 돈으로 하려나 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올해 건강보험재정 흑자가 1조 5천억이다.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선적인 기본항목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 5천5백억 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그래도 1조 가까운 돈이 남아돈다. 선택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적시한 항목 중에서도 반 정도는 흑자재정으로 내년에 당장 적용해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럴 생각이 아니다. 알려진 바로는 올해 흑자재정으로는 수가인상(이건 당연히 병원과 의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과 의료급여(정부재정부담)에서 건강보험으로 넘어온 환자에 소요될 재정을 충당하는데 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 무슨 돈으로?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첨부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이란 자료에 해답이 있었다. 여기서는 네 가지 안을 제출하고 있는데, 각 안마다 보장성 강화 항목과 그에 소요되는 재정 크기, 그리고 재원조달방안에 대해 적고 있다. 재원조달방안은 아주 상식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출을 줄이고 수입은 늘리는 것이다.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본인부담을 높여 건강보험재정에서 감당하는 부분을 줄이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의원의 경우 현행 본인부담율을 30%에서 35%로, 병원의 경우 40%에서 50%, 종합병원의 경우 50%에서 60%, 그리고 종합전문병원의 경우 50%에서 70%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보험료 1% 인상시 2300억 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고, 세대 당 월 보험료 1,030원이 추가 부담된다고 밝히면서 네 가지 안마다 2.4%, 6.5%, 10.9%, 16.9%의 보험료 인상규모를 제시하고 있다.


1% 부자를 위해 수십조 원 퍼주고, 99%의 국민건강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이 같은 방안을 보면서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병 주고 약 주기’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보장성을 강화하긴 해야 하는데 감기 등 가벼운(?) 질환으로 병원에 가면 돈을 더 내라는 것이고, 보험료도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그리 심하게 아프지 않을 경우, 본인부담이 높아져 부담이 되면 병원에 가지 말고 참으라는 것이고, 보험적용을 더 받고 싶으면 보험료 더 내고, 보험료 더 내지 않으면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이다. 이런 내용을 갖고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한다. 의견수렴이라기 보다는 국민이 안 받아들일 방안을 던져 놓고, 안 받아들이면 ‘보장성 강화는 없다’는 선언을 만방에 떠들고 다니겠다는 소리이다.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양도세 등 이른바 ‘1% 부자’만을 위한 감세 규모가 1년에 20조 원에 달하고, 2012년까지 80조 원에 이른다. 은행이 돈벌이를 하다가, 돈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준 게 1000억 달러(100조를 넘는다)에 달한다. 건설사를 구하려고 무조건 퍼주겠다고 한 돈이 9조 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대다수 99%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정책에는 정부 돈은 한 푼도 안 쓰고 국민의 호주머니를 추가로 털어내야만 시행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에 따르면 사회복지 230개 중 130개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삭감되었다고 한다. 감세, 은행지급보증, 건설사 지원을 위해 쓰는 돈도 결국에는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아마 항변할 것이다. 감세를 해야 부자들이 그 돈을 투자하거나 호주머니를 열어 소비를 할 것이고, 은행지급보증으로 수많은 직원들의 실업과 예금자들의 손해를 막을 것이며 건설사의 부도를 막아야 근무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지원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생각은 아마 초등학생도 할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도 그리 많은 전문성이 필요치 않은 지극히 단세포적인 사고만으로도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이다. 어쩌면 이 정부는 국민의 사고 수준이 자기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여 이 같은 ‘삽질 정책’을 계속 내놓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점은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 일각에서 현재의 건강보험의 ‘저급여-저수가-저부담’구조를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안한 ‘보험료 인상-건강보험보장성 강화’와 비슷한 ‘건강보험보장성 확대 -보험료 인상’ 등의 순서와 전제만 다를 뿐 결론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 국정감사 때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하여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가 180만 가구, 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중의 70% 이상이 저소득층이라고 알려진다. 이래저래 가난한 이는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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