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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자료

조합원 동지 여러분께

며칠 전부터 동지들께 드릴 선전물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생기는 일정을 핑계 삼아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벌써 일주일을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선전물을 써야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나 씨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 오늘도 한 줄의 선전물도 쓰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말은 너무 많은데, 컴퓨터 위로 영상처럼 지나가는 조합원 한 분, 한 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기계처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당연한 요구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우리의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선전물을 쓸 수 없었고, 그래서 전 지금 조합원 동지들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딱, 5분 만 저의 고민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마 저의 고민에 눈길을 주고 계시는 조합원 동지들 중에서 ‘한 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어야 한다.’는 ‘비정규직의 임금이나 처우가 정규직보다 적은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해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혹은 ‘대체 저 임금으로 어떻게 먹고 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적은 비정규직 임금 수준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연일 언론에 방송되는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의 투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구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고,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한 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커서 내 나이가 될 쯤에는 제발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그래서 내 아이 만큼은 비정규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신규 입사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오늘의 현실을 보면 ‘참 쉽지 않은 일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서든 내 아이는 낙타 바늘구멍을 통과해서 정규직으로 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생깁니다. 그래서 일류대학 보내기를 소망하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제 가끔 TV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비정규직 문제가 이 만큼이나 이슈화된 것이 어디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임금 동결 등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규직이 죄인이냐?’ 싶은 마음에 분통이 터지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해도 일은 끝이 없고, 갈수록 환자는 늘어가도 인력은 제자리걸음 입니다. 물가도 집값도 오르고, 아이들 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몇 년 째 임금은... 애들 교육비 걱정에, 노후 걱정에 갈수록 걱정만 늘어나는데 무슨 정규직이 큰 특혜나 누리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정말 한 숨만 납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다음에 또 재계약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봐도봐도 한 숨만 나는 임금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것인지... 나처럼 애들 공부도 시켜야하고, 집 장만도 해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할 텐데,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 또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한 임금으로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정말 ‘비정규직 정규직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용불안 없이 마음 편히 일하고, 일 한 만큼 임금 받아서 제대로 좀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우리 마음도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냥 마음으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늘이기,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된 병원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너무 필요한 일이다’라고 아무리 말 한 들 듣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투쟁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내 일도 아닌데, 뭐 우리병원 비정규직은 그나마 다른 곳 보다는 대우가 좋잖아?, 비정규직 투쟁 나도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비록 몇 년간의 투쟁의 성과로 비정규직의 처우가 좀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정규직/직접고용비정규직/간접고용비정규직/특수고용으로 나눠져 있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단결을 저하시키고 병원이 우리를 갈라치기 하는데 수월한 구조를 만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차별은 정당하다고, 경영을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비정규직은 불가피하다’고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병원의 이야기는 ‘경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력부족은 참아야 하고, 팀제/다면평가/연봉제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매번 힘들게 투쟁하고 뭔가 쟁취한 것 같은데도 현장은 여전히 팍팍하고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병원도 세상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한 조합원 동지 여러분. 그러나 세상은, 병원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87년 20주년이라고 온갖 정치인들이 자신이 87년 정신의 계승자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온갖 언론이 87년을 이야기하고, 이제 영화에서도 80년 광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저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쉼 없이 투쟁해 온 우리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투쟁이 또 가까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우리 나이가 될 때 즘엔 우리와는 좀 더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2007년 외주확대, 비정규직 차별유지, 별도직군 무기계약직화를 너무도 뻔뻔하게 외치고 있는 병원에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당연한 듯 거부하고 있는 병원에게 우리는 무어라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합니까? 여러분의 고민과 실천으로 답해주시지 않겠습니까?


2007년 어느 8월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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