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와혁신
- 입력 2026.10.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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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인 가구와 고령 가구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돌봄은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핵심 과제가 됐다.
돌봄노동의 시장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 달에 수백만 원의 간병비를 부담하면서도 간병사를 구하기 어려워 ‘간병 파산’을 걱정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가 하면 ‘독박 돌봄’으로 직장과 생계마저 위협받는 가족들도 있다. 이제 간병비 보험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겨질 정도다.
돌봄에 따른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돌봄을 직접 수행하는 간병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병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안전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간병노동자, 54%가 사고 경험
사고 발생 후 ‘본인 스스로’ 해결 82.9%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다 쓰러지려 하자, 이를 본 옆 병상의 간병인이 급히 환자를 붙잡았어요. 다행히 환자는 다치지 않았지만 간병인은 환자에게 깔리면서 허리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어요. 사고 이후 일을 하지 못해 아직도 병원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간병인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라고 하고, 병원은 소속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지원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20년간 간병 일을 해 왔는데 병원의 이런 대응에 큰 배신감이 들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난 9월에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간병노동은 상당한 신체적 부담과 위험을 동반한다. 가족이나 지인을 간병해 본 사람이라면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자를 반복적으로 부축하거나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허리, 어깨, 손목 등에 부담이 가중되고, 환자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나 돌발 행동에 대응하다 부상을 입기도 한다. 실제로 간병노동자의 54%가 찔림, 베임, 물체에 맞는 사고 등을 경험했으며 근골격계 부상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병원이란 특성상 2차 감염 위험도 상존한다. 내성균이나 옴 등에 의한 감염 위험뿐 아니라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유해 약물 노출 위험, CT·MRI 검사 과정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장시간 병원에 상주하는 간병노동자는 야간에도 환자의 돌봄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확보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위험을 간병노동자 개인의 주의와 책임만으로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다.
2025년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5개 대학병원 간병노동자 27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병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97.8%, 평균 연령은 65.15세로 중·고령 여성 중심의 노동 구조를 보였다. 24시간 근무 형태로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98.9%에 달했으며 평균 연속 근무 일수는 11.64일,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38시간에 불과했다.
간병노동자가 업무 중 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얻었을 때 문제는 치료비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치료를 위해 일을 중단하면 소득이 줄어들고,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생계를 위해 다시 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몸을 다쳐도 충분히 쉬지 못한 채 24시간 근무를 이어가고 밤에도 환자를 돌보느라 긴장된 상태에서 짧게 자다 보면 신체·정신적 부담이 누적돼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더욱이 사고 이후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82.9%에 달했다.

간병‘노동자’, 왜 산재보험에서 제외되고 있나?
노동자로 인정받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이 20여 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간병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안전한 노동 환경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일부 병원 간병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된 판례들이 나오고, 2015년부터 병원에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로 요양병원의 간병서비스에 보험을 적용해 간병비 부담을 줄이는 간병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병원 간병노동자는 일대일 사적 계약에 의한 특수고용 형태로 남아 있다. 특수고용 간병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2023년부터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았더라도 택배노동자, 퀵서비스노동자, 골프장 캐디, 플랫폼노동자 등 18개 업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무 제공자로서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해 왔으나 간병노동자는 제외됐다.
고용노동부는 간병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일하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노무 제공자에서도 제외한 것이다. 병원 간병노동은 사적 계약에 의한 것으로 관리·감독 주체가 없어 사용자로서 의무를 부담할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간병노동자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계속 제외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병원 간병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누가 어떻게 관리·감독하고 있는지, 병원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걸까?
간병노동자의 실질적 관리·감독 주체
병원과 직업소개소
지난 8월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서울과 지방의 15개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간병 관리·감독 실태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 간병노동자들은 간병서비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병원으로부터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받고 있었다.
병원 관리자가 간병 업무 등과 관련해 직접 지시하거나 간병 직업 소개소를 통해 간병노동자를 관리한다. 일부 병원은 병원이 선정한 간병 직업 소개소들과 협약을 체결해 간병료, 교육, 복장 및 수칙 등 구체적인 사항을 명기하고 있고, 간병 소개 업체가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을 운영하거나 벌점제를 두기도 한다.
그 밖에 민원이 발생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소개소 담당자에게 전화 또는 구두로 연락해 병원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병원은 민원이 발생할 경우 소개소를 통해 간병사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례 1>
간병 소개소 B에서 알선한 간병사 F는 환자에게 약을 챙겨 먹였다고 착각했으나 쓰레기통에서 약봉지가 발견됐다. 병원 간호부는 소개소에 경위서를 요구하고. 해당 간병사가 병원에서 간병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소개소 B는 모든 관리자의 이름을 명기하고 재발 방지와 간병사 F의 회원 자격 정지 내용을 담은 경위서를 작성해 병원 간호부에 제출했고, 간병사 F의 해당 병원에서의 간병 업무는 중단됐다.
<사례 2>
병원 C는 간병 소개소 12개 업체 관리자를 모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으로 업무를 지시했다.
병원 양식인 ‘간병인 병동 점검 현황’을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며 업체별 주의 사항 및 자체 시정사항(예를 들어 병실 내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 요청)을 전달했다. 병원 측에서는 병실 내 환자 안전과 낙상 사고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 및 안내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간병 소개소들은 환자 이탈 금지와 철저한 낙상 교육에 관한 사항 및 소개소가 시행한 교육 내용을 단체 대화방을 통해 병원에 보고했다.
<사례 3>
병원 B는 간병 소개소 6개 업체의 관리자들을 모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으로 업무를 지시했다.
소개소 G는 간병사 N의 퇴출 사실을 단체 대화방에 보고했다. 사유는 환자 케어 미숙과 병 원 규칙 위반이었으며 다른 협회에 등록하더라도 1년간 B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간병인 대부분은 병원 양식에 섭취량, 배출량, 식사량 등을 기록해 간호사에게 일상적으로 보고하고, 석션, 콧줄 피딩, 욕창 관리 등 실질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간병 업무는 필수적인 의료 보조 업무로서 간호사와 의사, 원무과 등 병원의 다른 직원들의 업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보고와 관리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6월 16일 ‘2026년 보건복지부 병원급 의료기관 간병서비스 제공 지침’을 병원급 의료기관에 권고했다. 지침은 100개 병상 이상의 병원에 사적 계약에 따른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병원 간병인에게도 감염 교육과 환자 안전 관련 조치 등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병원이 간병노동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관리·감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지침이다. 간호 등 병원의 의료업무와 관련된 일상적인 보고와 지시뿐만 아니라 감염 예방과 환자 안전에 관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병원의 간병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병 직업 소개소 또한 직업안정법상의 단순한 일자리 소개 역할을 넘어 간병노동자를 배치하고 관리하는 데 깊게 관여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병원의 관리·감독이 소개소를 통해 간병서비스에 개입하거나 관리·감독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소개소는 병원으로부터 감염 예방 등 교육 요청을 받으면 이를 간병인들에게 전달하고 교육을 시행하며 병원이 요구할 경우 교육 참가자 명단을 제출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과 소개소가 일상적으로 간병노동자를 관리·감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원 간병노동자들은 독자적인 프리랜서나 이른바 ‘3.3 개인사업자’가 아니다. 간병서비스를 통해 이윤을 얻고 실질적으로 관리·감독을 수행하는 병원과 소개소의 체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간병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고용노동부는 간병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돌봄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좋은 돌봄도 가능하다. 지금처럼 간병노동자의 희생과 환자·보호자의 부담 위에 병원의 필수 의료서비스가 유지되는 방식은 시급히 중단돼야 한다.
간병서비스는 병원의 필수적인 서비스로서 의료 제도 내에 편입돼야 하며, 병원이 간병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운영하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확대와 간병 급여화 등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돌봄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간병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은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을 얻었을 때 치료비를 지원받고 치료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도 생계를 보장받기 위한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아플 때 충분히 치료받고 쉴 수 있는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이는 현재 법·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 밖 노동자’가 ‘노무 제공자’로서 산재보험 적용 등 제도적 보호를 받기 위한 간명하고도 최소한의 요구다.
좋은 돌봄은 돌봄노동자의 희생 위에 세워질 수 없다. 당면한 간병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부터 조속히 실현돼야 한다.
*참고 자료
1) 사단법인 보건복지자원연구원(2025,. 간병노동자의 건강 및 노동실태와 제도적 보호를 위한 정책 과제
2) 사단법인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공익인권법재단공감·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2026), 병원 내 유료·무료 소개소 현장 실태 조사 결과
- 조사 기간: 2026.08.14.(금)~08.19.(수)
- 조사 대상: 국공립병원을 포함한 전국 15개 대학병원의 병원 내 유료·무료 간병 소개소 및 간병사 파견 현황
- 조사 방법: 대면 인터뷰 및 전화 인터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의 ‘아프고 다쳐도 산재가 되지 않는 노동, 간병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을’ 릴레이 기고는 매주 수요일 4회 게재될 예정이다.